19세 자폐 골퍼, 벙커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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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19·신성대)군은 프로 골프 선수다. 이군은 드라이버를 잘 쳤다. 평균 260m 비거리에 정확성이 뛰어났다. 동작이 간결하고 체중 이동을 잘하는 게 스윙 교과서 그대로다. 그는 올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이 돼 1부 투어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2년 전 세미프로 자격증을 땄고 올해 일본 2부 투어 예선에도 참가한다.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장.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키 182㎝, 몸무게 68㎏의 유연한 몸매에 기본기가 탄탄한 유망주로만 보였다. 연습 라운드를 마친 그에게 "오늘 어땠어요, 제일 잘된 게 뭐라고 생각해요"라고 묻자, 수줍은 듯 눈을 맞추지 못하고 내리깔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작은 목소리로 "좋았어요" 한마디 했다. 이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를 5년째 지도하는 김종필 프로가 나서서 "드라이버는 국내 투어에서도 정상급 수준"이라고 하자, 이군은 "짝대기"라고 했다. 막대기처럼 똑바로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자폐(自閉)성 장애 3급이다. 어릴 땐 증상이 더 심한 2급이었다고 한다. 이군을 세상과 연결해온 어머니 박지애씨와 김종필 스윙 코치가 거들면서 좀 더 긴 대화가 이어졌다. 김 코치는 "다양한 선수를 지도해 봤지만 승민이에 대해선 기적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코치는 "알아듣게 타이르면 이야기한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가장 가르치기 쉬운 제자"라고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면 이군은 5~10세 정도 되는 어린이다. 그는 지난해 KPGA 2·3부 투어와 KGF(한국골프연맹) 투어에서 300만원 가까운 상금을 받았다. 골프라는 스포츠를 통해 정상인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세상과 단단히 연결된 것이다. 이군은 두 살 무렵 선천적 자폐성 발달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부모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군은 특이하게도 파란 잔디에 하얀 공이 날아다니는 골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잔디를 한 움큼 쥐고 냄새 맡는 버릇이 있어 늘 코에 흙이 묻었다. 냄새만 맡아도 잔디 종류를 알아맞힌다. 한 번 다녀간 골프 코스는 손바닥 보듯 기억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이군에게 쏟아부었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돌발 상황이었다. 이웃 어린이 생일날 놀러갔다가 "얘 바보 아니냐"는 또래들 놀림에 아이 혼자 집까지 도망친 일도 있었다. 이군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특수학교로 옮겼다. 변기에서 나는 물소리에 놀라 팬티도 올리지 않고 교실로 뛰어들어온 적도 있다. 그가 자폐의 동굴을 조금씩 벗어나게 해준 것은 스포츠였다. 처음엔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듯하여 아이스하키 클럽팀에 보냈다. 1년에 80~90게임을 하러 미국 전역과 캐나다를 다녔다. 자기가 잘하는 걸 하게 된 승민이는 웃음이 많아졌다. 중학교 때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골프를 시작했다. 이군이 좋은 샷을 날릴 때마다 어머니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러면 이군도 따라 했다. 이군은 자신보다 훨씬 공을 잘 치는데도 성적이 안 좋다고 부모에게 머리를 쥐어박히는 또래 아이들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군은 "엄마는 이끌어주고, 아빠는 기다려주고"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받으며 자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는 그만의 화법이다. 주치의인 분당 서울대병원 유희정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승민이는 자폐가 있더라도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 좋은 본보기"라고 했다. 이군에게 장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마스터스" "승가원" 같은 단어가 나열됐다. 메이저 골프대회인 미국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하고, 언젠가 TV에서 본 장애복지시설 승가원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말을 이군은 그렇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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